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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 골수질환 사망 산재 불인정…법원 "업무상 재해 맞다"
  • 백지나 기자
  • 등록 2025-06-23 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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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열악한 작업환경, 교대근무 등 발병 원인 돼"
  • 보호장비 미비·장시간 근무 복합작용 발병 위험 커질 수 있어


[e-뉴스 25=백지나 기자] 반도체 공장에서 유해 물질에 장기간 노출돼 골수 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지난 4월 반도체공장 노동자 A 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A 씨 유족에 대한 부지급 처분의 취소를 선고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한 중소기업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연마 및 세정하는 일을 맡았던 A 씨 2017년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아 치료했지만 이듬해 12월 끝내 사망했다. A 씨의 직접사인은 폐렴이었고, 선행사인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으로 판명됐다.


유족은 A 씨가 공장에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돼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 발병했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 씨에게 발병한 골수형성이상증후군과 유해물질과의 관련성에 의학적 근거가 불명확하고 A 씨 업무와 선행사인 사이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또 공단은 A 씨가 작업 중 불산·염산·질산·극저주파 전자기장·디클로로메탄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추정하더라도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역학조사 회신서를 참고할 때 유해물질량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A 씨 측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한 이후 정식 소송절차에 들어갔다.


A 씨 측은 재판에서 △11년 넘게 일하면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된 점 △작업장에 환기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개인보호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점 △1주 평균 60시간 교대근무하며 비타민 D 결핍 등 신체 항상성 유지가 어려운 상태인 점 등을 종합 고려하면 만성적 유해물질 노출이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발병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A 씨 소송의 증거로 채택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수행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A 씨가 일한 각 작업장의 작업환경측정 결과상 디클로로메탄 등 유해물질은 검출되지 않거나 노출 기준 미만으로 측정됐다. 또 불산, 질산 등 다른 유해인자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였다.


또 디클로로메탄 노출과 급성 골수병 발병의 연관성을 규명하기에 연구가 부족하고, 극저주파전자기장이 성인의 백혈병 발병 사이의 일관된 연구 결과가 없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평가도 함께 재판에 제시됐다.


반면 재판부는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의 발병 원인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작업 환경상 유해 요소들에 지속·복합적 노출된 후에 병이 발생한 것을 고려할 때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일한 회사의 작업환경 측정 결과상 디클로로메탄 측정값이 2002년에 비해 2003년 크게 높아졌고 노출기준의 65%를 기록해 그 수준이 낮지 않고, 단 한 차례의 측정 결과만으로 A 씨의 근무기간에 누적 노출된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A 씨가 근무한 사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만한 적절한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동료 근무자들의 진술을 고려할 때 작업장 대부분 공간에 환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망인은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만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환경측정 결과상 측정된 유해인자의 노출값보다 더 높은 수준 또는 유해인자 외에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법원은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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